메리 시콜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만큼 친숙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간호와 의료 헌신의 중요한 인물로 남아있습니다. 검은 나이팅게일, 마더 시콜이라고도 불리며 크림전쟁 중 의료의 공헌을 하였습니다.
메리 시콜 (Mary Seacole)
메리 시콜은 스코틀랜드 아버지와 자메이카 어머니 사이에서 1805년에 태어났습니다.
치료사였던 어머니에게서 의료와 간호를 배웠으며, 메리 시콜은 의료계에서 당시 여성이자 흑인으로서 흔치 않은 업적을 세웠지만 나이팅게일에 비해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마더 메리 시콜과 크림전쟁
메리 시콜의 인생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크림 전쟁 (1853-1856)에서 나왔습니다. 메리 시콜은 크림전쟁 소식을 듣고 간호사로 의료지원을 결정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나이팅게일 간호팀에 합류를 하려고 하였으나 인종차별을 이유로 합류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메리 시콜은 포기하지 않고 자비로 돈을 마련하여 최전선에서 간호활동에 참여를 하였습니다. 브리시티 호텔을 만들었으며, 병원, 요양원, 부상병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습니다.
크림 전쟁 동안 의료지원을 제공하는 데 있어 메리 시클의 역할은 컸으며, 부상에서 질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였습니다. 크림 반도에서 생활하는 동안 인종적 편견과 싸웠을 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불굴의 정신력을 보여주었으며, 메리 시콜의 헌신과 의지로 병사들에게 마더 시콜이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전쟁 이후와 메리 시콜의 위상
크림 전쟁 이후 메리 시콜은 전쟁 후 나이팅게일의 명성에 가려져 잊힐 뻔했으나, 메리 시콜에게 간호받은 병사들의 지지로 튀르키예와 영국 등에서 훈장을 받게 되었으며, 1857년 영국 흑인 여성이 쓴 최초의 자서전인 많은 땅에서 시콜 부인의 멋진 모험을 출간하게 되었으며, 이후 1881년 영국에서 사망을 합니다.
메리 시콜의 업적은 역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잊혀있었으나 21세기 초반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2004년에 위대한 흑인 영국인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하였으며, 2016년에는 런던의 세인트 토마스 병원에 동상이 세워지기도 하였습니다.
정리
메리 시콜은 19세기 중반 영국의 흑인 여성으로, 크림 전쟁 중에 의료 지원을 제공하며 인간성과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검은 나이팅게일 혹은 마더 시콜로 불리며 인종차별과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질병과 부상을 치료하며 의료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업적은 오랫동안 잊혀 있었지만, 21세기에 다시 주목을 받았으며 흑인 여성으로서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메리 시콜의 헌신과 업적은 런던의 세인트 토마스 병원에 동상을 세우는 등 다양한 형태로 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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