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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헨리 6세 혼란의 시대, 백년전쟁의 종결과 장미전쟁의 서막

by garni 2024. 11. 25.

헨리 6세는 잉글랜드 역사에서 가장 비운의 군주로 평가받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재위 기간은 백년전쟁의 종말과 장미전쟁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역사적 사건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헨리 6세의 생애는 정치적 혼란, 왕위 찬탈, 정신적 불안정, 그리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이 났습니다.

헨리-6세
헨리 6세

 

헨리 6세, 혼란의 시대

헨리 6세는 1421년 12월 6일에 헨리 5세와 캐서린 드 발루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친인 헨리 5세가 사망을 하여, 9개월 만에 왕위에 올라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재위기간 중에 정신이상증을 보이기도 하였으며 백년전쟁과 장미 전쟁을 겪으며 혼란스러운 통치기를 보내다 요크 가문의 에드워드 4세에 의해 왕위에서 폐위가 되고 1471년에 런던탑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왕으로 즉위하다

헨리 6세는 태어난 지 9개월 만에 부친 헨리 5세가 사망하면서, 아기였을 때 이미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헨리 6세의 즉위는 백년전쟁 중 중요한 시점에 이루어졌는데, 당시 잉글랜드는 아쟁쿠르 전투 이후 프랑스 내에서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헨리는 통치 경험이 없었으며, 이는 그의 왕국에 불안정을 초래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헨리 6세의 초기 통치는 섭정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베드퍼드 공작 존이, 잉글랜드에서는 험프리 공작 글로스터가 두 왕국을 관리했습니다. 그러나 섭정 기간 동안 프랑스 내 잉글랜드의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잔 다르크의 등장으로 전세는 프랑스에게 유리하게 돌아섰습니다. 헨리 6세가 1437년 직접 통치를 시작했을 때, 이미 잉글랜드의 프랑스 내 영토는 크게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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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종결과 잃어버린 영토

헨리 6세의 통치 기간 중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는 백년전쟁의 종결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일군 프랑스 내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었지만, 1431년 잔 다르크의 활약과 프랑스 국민들의 저항이 결합되면서 잉글랜드의 입지는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헨리 6세는 1444년에 프랑스의 앙주의 마르그리트와 결혼을 화며 잠시 휴전을 하였습니다. 프랑스와의 전쟁이 재개된 후, 헨리 6세는 1453년 카스티용 전투에서 패배를 하고 보르도가 포위를 당하면서 항복을 하였으며 잉글랜드는 프랑스 내 칼레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토를 잃고 말았습니다.

 

 

헨리  6세의 정신병과 장미 전쟁

헨리 6세의 정신병은 유전적 요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외조부인 프랑스의 샤를 6세가 심각한 정신병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453년 이후 정신병이 심해진 헨리 6세는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잉글랜드 내부에서도 큰 갈등을 불러왔습니다. 결국 요크 가문이 왕위를 주장을 하며 랭커스터 가문 간의 대립이 발생을 하며 장미전쟁이 발발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헨리 6세는 장미 전쟁 중 두 차례 왕위를 잃었으며, 포로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461년 요크 가문의 에드워드 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헨리 6세는 폐위당했습니다. 이후 왕위를 잠시 회복하기도 했지만, 다시 요크 가문에게 폐위가 되며 헨리 6세의 통치는 끝이 났습니다.
폐위가 된 헨리 6세는 1471년 런던탑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사망은 많은 역사학자들이 요크 가문의 음모에 의한 암살로 추정하고 있으며, 헨리 6세의 통치는 잉글랜드 역사에서 혼란과 내전의 시대로 기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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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헨리 6세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이라는 두 가지 큰 위기를 경험하며, 국가의 혼란과 쇠퇴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정치적 약점과 정신적 불안정은 통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고, 이는 결국 왕국 내내 갈등과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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